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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Pictures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일생에 대하여

by green_day 2022. 11. 29.

 

프리다 칼로 데 리베라
(Frida Kahlo, 1907~1954)

출생: 1907년 7월 6일, 멕시코
사망: 1954년 7월 13일(향년 47세)
배우자: 디에고 리베라(1929년 결혼 ~39년 이혼, 1940년 재결합)




유년시절

위의 사진은 12살때 찍은 사진이다. 그녀는 6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가 불편했지만 총명하고 아름다운 소녀로 자랐다. 그녀는 생물학, 해부학 등을 공부해 장차 의사가 되려고 했다.


칼로가 18살이던 1925년 일어난 교통사고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진보적인 여성의사로서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하굣길에 타고 있던 버스가 전차와 부딪히면서 칼로는 치명상을 입었다. 그녀의 옆구리를 뚫고 들어간 강철봉이 척추가 골반을 관통해 허벅지로 빠져나왔다. 소아마비로 불편했던 오른발은 짓이겨졌다. 9개월 간 전신에 깁스를 한 채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깁스를 한 채 침대에 누워 두 손만 자유로웠던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것 뿐이었다. 칼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관찰하고 또 관찰하며 스스로의 모습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나는 너무나 자주 혼자이기에 또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에 나를 그린다" 라고 말했다.

 


칼로는 사회주의 사진작가 티나 모도티를 통해 리베라를 만났고, 예술성과 재능을 높게 평가받게 된다. 둘은 사랑에 빠졌고 1929년 결혼하게 된다. 당시 멕시코를 대표하는 천재화가 리베라의 아내로서 칼로는 만족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여성편력이 심했던 리베라는 결혼 후에도 수차례바람을 피고 다녔다. 칼로는 질투와 분노를 넘어선 고독과 상실감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했다. 심지어 그녀의 여동생과도 바람을 폈다.(개쓰레기..)


칼로는 리베라의 아이를 낳고 싶어했으나, 교통사고로 다친 그녀의 몸은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몇 차례의 유산과 불임은 그녀의 인생에 절망감을 더해주었다.


1940년대 말부터 건강이 악화된 칼로는 결국 오른쪽 다리를 잘라내야만 했고 몇 차례의 척추 수술은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나 칼로는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루에 서너 시간씩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리고 1954년 7월 그녀는 고통과 고독 속에서 보낸 47년의 슬픈 생을 마쳤다. 일기 마지막에는 "I hope the exit is joyful, And I hope never to return."(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라고 쓰여있었다.

프리다 칼로 생애 마지막 그림,

인생예찬(Viva la Vida)

 

생애 마지막에 그리는 그림은 화가의 인생이 담겨 함축적이며, 상징성이 강하다. 인생예찬은 그녀가 47세의 나이로 요절하기 직전에 그린 정물화이다. 쓰디쓴 인생의 고배를 마셔왔음에도 이 그림의 제목은 삶에 대한 찬사이다. 죽음이 목전 앞에 드리워졌음을 직감했음에도, 그림 속의 수박은 새빨갛고 과즙이 풍부해보인다. 칼로의 인생 스토리를 모른 채로 이 그림을 봤을 때는, 화가가 참 활력있고 즐거움에 가득찬 인생을 살아왔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화가의 생애는 정말 의외였다. 이야기를 알고 난 후 그림을 보자, 가히 충격적이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남긴 말

 

나는 아픈 것이 아니라 부서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 살아있음이 행복하다.

 

 


고통, 기쁨, 죽음은 존재를 위한 과정일 뿐. 이 과정의 혁명적 투쟁이야말로 지성을 향해 열린 문이다.

 

 


일생 동안 나는 심각한 사고를 두 번 당했다. 하나는 16살 때 나를 부스러뜨린 전차이다. 두 번째 사고는 바로 디에고다. 두 사고를 비교하면 디에고가 더 끔찍했다.

- 프리다 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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